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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더시대사랑

월간반항행동 4月호: 성

by 안티소셜( )클럽 2026. 4. 2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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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젊은이들은 어째서 틴더(를 비롯한 수많은 데이팅 앱)를 설치하는가... 이런 질문은 무의미하다. 뻔하고 재미없다. 뭐 꼴리고 외로우니까 했겠지! 게다가 틴더 이용자 성비(2022)는 전 세계 기준 75퍼센트, 한국 기준 96.6퍼센트(!)가 남성이다. 헤테로 섹슈얼 시스 젠더들의 틴더 사용은 대체로 아~무 의미 없다는 것. 그럼 누굴 보느냐, 퀴어들을 보자.

 

본격적으로 틴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 이뤄지는 만남이 성다수자들의 그것과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스스로를 걸레라 칭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지만, 보통 퀴어들은 성에 개방적이다(보통 그렇다고. 그렇지 않은 퀴어들을 지우려는 게 아니다). 첫 만남에 쉽게 섹스를 하고, 여럿이 돌려 사귀거나 자고, 누군가의 특이한 섹스 선호 혹은 불호를 쉽게 이해하고, 친구 사이에 몸을 섞고서도 전후에 관계가 변하지 않는 일도 많다. 정확한 이유는 필자도 잘 모르겠다. 단순히 인구 풀이 적어 선택 폭이 좁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젠더에 의해 친구 대상과 연애 대상이 칼같이 나뉘지 않는 집단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성으로 인해 소수가 된 이들이어서 성에 대해 관용적인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셋 다일지도. 아무튼 우리는 그렇다(보통이라고 했다). 일회성 만남에도 거리낌이 덜하고, 친밀감 표시로도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인지하고 읽어야 이해가 반은 될 것이다. [1]

 

다시 틴더 이야기로 돌아오자. 틴더는 자기 성별과 내 매치 스택에 표시될 이용자들의 성별을 설정할 수 있다. 이용자 남성, 상대방 여성으로 설정한다면 그냥 데이트 앱이지만, 내가 남성일 때 상대방도 남성이 뜨게 설정한다면, 짜잔! 틴더는 게이 데이팅 앱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논 바이너리 옵션도 있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도 프로필 설정에 반영할 수 있어 틴더는 생기기를 퀴어 프렌들리 하게 생겼다.

이렇게 설명은 했지만, 사실 태생부터 퀴어 데이팅을 위해 나온 것들도 많다. 필자가 익숙한 게이 앱만 해도 국내에서 유명한 Jack'd와 Heesay(前 Blued), 북미에서 많이 쓰는 Grindr까지 아주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불구, 틴더를 쓰는 이유가 뭘까?

 

간단히 말해, 틴더와 다른 데이팅 앱들은 성격이 다르다. 게이 데이팅 앱들은 대개 섹스가 목적이다. 실행하면 거리 가까운 순으로 수많은 프로필이 메인 화면에 주르륵 뜬다. 쭉쭉 넘겨가며 프로필 사진과 간단한 소개 글(보통은 본인의 키, 몸무게, 나이, 선호 포지션과 성기 길이가 적혀 있는)을 보고, 마음에 들면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이 오면 섹스하러 나가는 거다. 당연히, 나에게도 누구나 연락할 수 있다. 2할은 로맨스 스캠, 절반은 노픽(No Pic, 프로필에 사진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 고작해야 나머지 3할 정도가 읽어줄 만한 연락이다. 당연히 피곤하다. 결말도 뻔하다. "아 좀 꼴리는데..." 하며 앱을 켜선 둠스크롤링하다 포기하고 폰을 끄거나, 운 좋게(혹은 눈을 낮춰서) 괜찮은 상대를 찾고 불만족스러운 섹스를 한 뒤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거나.

레즈비언 데이팅 앱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필자의 레즈 인맥들에 의하면) Sis와 같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보통 비슷한 포맷을 가지고 있고, 미성년자 가입이 가능한 경우도 많아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고 한다. 누군가가 자기 남자친구를 데려갈 테니 3p를 하자고 한 경우도 있었다고.

 

그럼 틴더는 뭐가 다르냐? 틴더는 상대방과 내가 서로 프로필이 마음에 들어 Like를 준 경우가 아니면 연락할 수 없다. 유료 결제로 메시지를 보낼 수는 있지만 그것도 한 번만 가능하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서만 연락을 받는다는 점, 내가 연락하는 상대가 나를(적어도 사진상으론) 마음에 들어 했다는 최소한의 보장 이 두 가지가 꽤 큰 차이를 만든다. 화끈한 섹스 한 판이 목적이라면 아무에게나 쉽게 연락할 수 있는 다른 앱을 사용했을 테니까. 가볍게든 진지하게든 연애, 적어도 친구가 될 사람을 찾는 공간이 되는 거다. 물론 매치된다고 마냥 모든 게 잘 흘러가지는 않는다. 상대방이 나를 진짜로 마음에 들어 한 게 아니라 조작 실수로 Like를 줬을 수도 있고, 진짜 관심이 있어서 매치된 상대가 대화엔 적극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방이 적어둔 프로필과 사진 몇 장 외에 어떤 정보도 없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방어적인 태도가 나오고 상대방의 중립적인 행동이 아니꼽게 보인다. 현타를 맞고 대화가 어그러지는 게 흔한 일인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에게 틴더는 그저 데이팅 앱보단 큰 의미를 갖는다. 무려 틴더 안에서 "어플 안 하는 사람"을 구하기도(!) 할 정도로. 데이팅 앱 전반에 "위험하다"거나 "걸레 같다"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과 반대로,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 틴더는 수줍은 만남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제 여기서 약간 뻔하고 씁쓸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왜 퀴어들의 만남은 이렇게 밀려났을까? 성다수자들의 만남은 언제나 자만추가 우선되는 옵션이지 않은가. 왜 퀴어들은 화면 속에서 인연을 찾고, 또 왜 필자가 과 CC를 했을 때 그것이 기적이라는 말을 들었을까? 이것이 단순히 퀴어들의 수가 적어서일 수는 없다. 통계청에서 퀴어에 주목해 주지는 않기 때문에 [2] 간접적으로 그 수를 확인해 보자면, 2024년 갤럽이 미국 Gen Z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결과 2할가량이 스스로를 성소수자라고 말했다. 심지어 상승세다. 작년, 올해엔 더 늘었을지도 모른다. 5분의 1? 성다수자가 4배나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찾아보기 힘든 수준은 아니다. 뭐 남들보다야 어렵겠지만 길 가다 마주친 누군가와 첫눈에 반해서 연인이 되는 것도 마냥 꿈같은 이야기는 아니어야 맞다. 음식 취향 물어보는 것처럼 성 정체성을 물어보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기만 한다면! 하지만 슬프게도, 아직 세상의 대부분 공간에서 퀴어는 터부시되고 있는 모양이다. 함부로 물어볼 수도 없고, 스스로를 드러낼 수도 없어서 자기네들끼리만 걸러진 공간에서만 만남을 찾다니.

 

필자는 운이 좋아 살면서 단 한 번도 기억에 남을 만한 호모포빅한 언행을 당한 적이 없고(사실 있을지도 몰라. 너무 당당해 보이니까 뭐라 말을 못 얹었을지도), 그 덕에 상처받지 않은 채 지금도 공공연히 스스로가 게이임을 알리고 살고 있다. 그 덕인지 주변에도 필자에게만은 커밍아웃을 한 이들이 많았다.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우리가 더 많이 앞으로 걸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를 만나기 전까지 스스로가 퀴어임조차 인지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뭔가 스스로 고장 났다고만 여기다가, 나를 보고서 어떤 가능성을 떠올린 것이다. 그만큼 이 사회의 모두는 퀴어를 잘 모른다. 잘 모르고, 잘 가르치지 않는다. 이 글에서 언급조차 많지 않은 점을 보면 알겠지만 퀴어 당사자인 필자도 젠더퀴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다.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왜 존재하는 것인지 단일한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3] 모든 척추동물 종에서 발견된다는 것. 신기하긴 하지만 자연에 반하지 않는다는 것. 괜찮다는 것. 이 정도만 모두가 알고 있어도 오늘보다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인데, 누군가 해주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 이미 한 번 용기 낸 사람들이 목소리를 더 많이 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그걸 듣고 더 많은 사람이 용기를 낼 수 있게 되고, 언젠가 "나는 시스젠더가 아니다", "나는 헤테로섹슈얼이 아니다"란 말이 "나 변비 걸렸어"보다 시덥잖은 말이 되도록.

 

재밌는 이야기 하는 척 하면서 결국은 훈화 말씀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다들 많이 떠들자. 더 당당하게 살자. 이 글을 읽었든, 읽지 않았든 모두가 내일 아침은 오늘보다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일어날 수 있길 바라면서, 나는 오늘도 "말 많은 게이 남자애"가 되러 떠난다.



 


[1] 퀴어들의 만남이 더 궁금하다면 W/O F.의 <나의 동료들에게>를 읽어보길 권한다.

[2] 최대한 유관한 것을 찾아보려 노력했으나, 성소수자에 대한 윤리관 조사 결과가 찾을 수 있는 전부였다.

[3] 특정 유전자가 영향을 준다는 가설은 있었지만, 단일 유전자 하나가 결정한다는 가설은 기각되었다. 후천 요인과 선천 요인이 고루 작용한다는 추정 정도가 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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