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경
이태원이라는 지명에는 이미 이 장소의 성격이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효종 때 이 일대에 배나무 밭이 많아 ‘이(梨, 배나무 이)’가 붙었고, 한양을 드나드는 여행자를 위한 역원이 위치해 ‘원(院, 집 원)’이 더해져 이태원이 되었다. 한편, 임진왜란 이후 귀국하지 못한 일본인들의 성폭행으로 인해 태어난 혼혈아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라는 설에서 비롯된 ‘이태원(異胎圓)’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어떤 기원을 따르든, 이태원은 출신성분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모이고 스치며 형성된 장소다.
일제강점기 용산에 일본군 사령부가 들어섰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기지가 그 자리를 그대로 차지하면서 이태원은 기지촌의 성격까지 띠게 되었다. 한 번 열린 문으론 계속해서 신문물이 흘러들어왔으며,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록 음악 감상실 등이 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기능했다. 이후 ‘후커 힐(Hooker Hill)’과 ‘게이 힐(Gay Hill)’이라 불리우는 유흥지대가 형성되었다. 이태원은 ‘외화벌이 시장’이자 ‘소비와 쾌락의 순환장’이 되었다. 이태원만의 특수적인 역사적 조건 속에서 트랜스젠더 여성들 또한 이태원의 풍경을 구성하는 고유한 존재로 자리잡는다.
‘이태원은 무엇일까 기록하기 프로젝트(약칭 이무기)’는 클럽에서 공연예술을 발전시켜온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이태원 재개발을 맞닥뜨리며 느낀 기록 필요성에서 출발한다. 이무기는 이태원 트랜스젠더 – 성노동자 커뮤니티의 약 70년 역사를 아카이빙하는 창작 및 기록 작업이다. 퀴어 예술가, 연구자, 활동가로 구성된 이무기는 2025년 1월 두산아트센터에서 다큐멘터리 연극 「이태원 트랜스젠더–클럽 2F」를 선보였고, 이어 3월에는 「트랜스–젠더–시간–지도」를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기획전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에서 발표했다.
‘트랜스젠더 클럽’이란 트랜스 여성이 호스티스로 일하는 유흥업소를 의미한다. 이무기 프로젝트는 그동안 상업적 공간으로만 소비되거나 이방인으로 외면되었던 이태원 트랜스젠더–성노동자 커뮤니티의 역사를 발굴하고 기록함으로써 망각에 저항한다. 특히 이들은 반세기 넘게 지속된 그들 고유의 삶을 성노동, 예술노동, 돌봄노동 맥락에서 재조명한다. 무대에 오르는 ‘로즈마리’, ‘색자’, ‘미래’, ‘미란’은 평균 연령 60세 트랜스 여성들로, 가장 유명했던 클럽인 열매, 보카치오, 여보클럽(여보여보)의 살아있는 역사를 들려준다.
‘성을 전환’하는 것이 트랜스젠더로 살아감에 가는 것의 전부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부여된 신체와 불일치를 경험한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이탈당한다. 1980-90년대 젊은 세대로 살아간 이들에게 이는 사회적 모멸과 가족 단절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결국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이 모여있는 클럽으로 흘러들어와 모인다. 극 중 미래가 색자를 보며 “저게 나와 똑같은 인간인가”라고 말하는 장면은, 서로를 인식하는 최초의 순간을 보여준다. 극 중에서 이들은 서로를 ‘언니’ 혹은 ‘썅년’ 등으로 부르는데, 서로를 설명할 언어를 타자화된 표현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따뜻한 연결이 느껴진다.
공연은 대화와 립싱크로 이루어져 있다. 팝송, 국내 가요, 일본 가요 등 당대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곡들로 무대를 채운다. 이것은 트랜스젠더 클럽에서 그들이 발전시켜온 공연예술 중 하나인데, 여성 젠더일지라도 남성 목소리는 생득적 특성이니 립싱크 문화가 자연스러웠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신기한 건 ‘색자’는 립싱크로 노래하더라도 실제로 목이 메고 쉰다고 말한다. 여기서 립싱크가 단순한 흉내내기가 아니라 실제 노래하는 것과 같은 에너지와 효과를 동반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들에게 클럽은 노동의 장소였을 뿐 아니라 서로를 확인하고 지지하는 공동체였다. 열심히 일 해 번 돈으로 성전환수술을 하고,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 그것은 생존 전략이자 삶의 방향이었다. 젠더와 퀴어에 관한 담론에서 성노동자들은 종종 외면된다. 하지만 해방 후 한국 젠더와 퀴어에 관한 담론에서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클럽이 다루어지지 않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밀려난 존재들에게도 급이 있다면, 1970-80년대 이태원의 트랜스젠더들은 제대로 명명되지도 발화하지도 못한 채 떠도는, 아주 하위의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립싱크, 화려한 드레스와 메이크업, 그리고 서로를 ‘썅년’이라 부르면서 위해주던 클럽이란 울타리의 도움을 받아서 존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태원 트랜스젠더 클럽은 성노동자들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조건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중장년 트랜스젠더 퀴어는 낯설다. 그러나 이무기는 그들이 지난 인생 내내 수행해온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들의 역사 또한 기록하며 세상에 응수한다. 텍스트가 아닌 목소리로, 영화가 아닌 무대로. 비항구적인 매체인 퍼포먼스를 택한 건, 그것이 색자, 미래, 미란이 한 평생 해왔던 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랑 받는 여자’가 되고 싶었다는 이들의 바람은 공연으로서 이들을 대면할 때,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달된다. 문자가 전달하지 못하는 것까지 밀려들어 감정에 동화되게 만든다. 이 글도 트랜스젠더를 ‘신체와 다른 성별을 갖고자 하는 사람’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던 내가 한 번의 관극과 그로 인해 촉발된 글쓰기를 따라가며 트랜스젠더 클럽을 생각한 기록이다. 약 300석 규모의 공연장이었지만, 나는 그 공간이 하나의 트랜스젠더 클럽처럼 느껴졌다. 옆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트랜스젠더 커플, 무지개 스티커와 퀴어퍼레이드 뱃지로 장식된 아이템을 가진 앞자리 관객 분 등을 봤기 때문이다. 관객들 또한 무대 위에 서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처럼 화려했고,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을 한 게 부끄럽다) 노래가 끝날 때 함께 환호하는 분위기는 자연스럽고도 뜨거웠다. 한편으로 눈치도 보였는데,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그 자리에 앉아 그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 무례한 일은 아닐지 망설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랑을 추구하는 마음만은 이해해줄 인생 선배들이라 믿었다.
열매, 보카치오, 여보클럽은 재개발과 펜데믹으로 문을 닫았지만,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 동안, 나도 가까이 대면할 기회를 보다 자주 갖고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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