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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름

월간반항행동 6月호: 땅

by 안티소셜( )클럽 2026. 6. 2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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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나는 걸었다. 계속. 축축하고 구수한 기운만 가득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알았다. 계속 걸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는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계속 걸으니 냄새가 났다. 비가 내릴 때면 식물 뻗은 것들이 여름 같은 냄새를 뿌렸고, 이따금 피 냄새와 시큼한 썩은 내도 풍겼다. 결국엔 전부 녹아 흙 내음만 남았지만. 또 계속 걸으니 소리가 들렸다. 쇠 냄새와 함께 무언갈 연거푸 내리치는 소리. 불똥이 튀어 오르고 거뭇한 쇳덩이가 갈라지며 시뻘겋게 달아오른 속살을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또 커다란 소리. 그러고선 쇠 냄새가 났다. 나는 쇠 냄새 나는 무언갈 맞으며 계속 걸어갔다. 입안이 짭짤했다. 위에선 많은 것이 천천히 내려왔다. 돌, 물, 뼈, 살... 임금의 엉덩이를 받치던 옥좌도 어느 옛날 내려와서 지금은 내 발밑에 쌓여 있겠지. 계속 걷다가 다리가 아파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때 나는 세 걸음을 더 디뎠고 다시 한 걸음을 더 걸었다.


 "나갈 시간이야."
 나였다. 내일쯤 아마 내가 내 손으로 땅에 묻은 나였다. 내가 서서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일어나라고.

 서 있었다가, 다음 순간 나는 바닥에 있었다. 일어나지지 않기에 나는 그냥 누워 있다가 아래로 스며들었다. 그러고서 커다란 땅에 섰다. 그 앞에 보인 것은 아주 커다란 얼굴. 아무것도 없고 잠든 얼굴이 코를 골 뿐. 큰 소리가 두어 번 나자 무언가가 생겼다. 눈이 뜨이고, 몸이 일어나자 하늘과 땅 사이가 벌어졌다. 해, 달이 하늘을 반씩 갈라 차지하였고 손이 지나간 자리는 강, 발이 지나간 자리는 바다가 되었다. 나는 그 몸 위에서 이리저리 굴러떨어지며 그것을 지켜보았다. 데굴데굴 굴러 어느 산자락에 툭 떨어졌을 즘, 얼굴이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뒤 그 몸은 사라졌고,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 절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싸우고, 멈추고, 세우고, 무너뜨리면서 살았다. 풀과 나무는 일어서다 시들고 거기서 다시 싹을 틔웠으며, 물은 고이고 말랐다가 다시 내렸다. 원래 난 곳으로 돌아갔지만, 어느 것 하나 처절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삭 한 알이 바윗돌보다 무거웠다. 그러기에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에 마고라는 할미가 있었다.'

 "괜찮아요? 병원 안 가도 되겠어?"
 "아, 네... 괜찮아요. 헛디뎠나 봐요. 평소에는 핸드폰 플래시 켜고 가는데... 오늘은 그냥 내려갔더니."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일어났다. 목과 손목을 돌려 보니 나름 멀쩡하다.
 "태양광 이거를 그냥 선 있는 걸로 바꿔야 될까 봐요. 이게 해 방금 졌을 때까지만 밝구, 금방 꺼져."
 "아니에요, 제가 그냥 조금 더 조심하죠 뭐. 저는 가보겠습니다.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먼지를 툭툭 털고 삐걱대는 대문으로 향한다. 잘 잠기지 않는 문을 쾅 닫고, 길을 따라 조금 걸어 자전거를 빌려 탄다.
 '흙 밟아 본 지가 언제였더라...'
 페달을 밟자 시원하게 앞으로 나간다. 밤공기가 선선하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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