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마을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온 힘이 필요하다

월간반항행동 6月호: 땅

by 안티소셜( )클럽 2026. 6. 25. 16:36

본문

: 정릉골에 연대하며 

 

구정은

 

예로부터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었다. 어쩌면 선조들의 그 말에는 양육보다 공동체 의식으로 길러지는 “인간”이라는 중심이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또 다른 인간과 교류하며 살아가는 세계에서 마을 공동체의 무차별적 소멸은 정릉골에 뿌리내린 서사적 명맥을 끊어버릴 뿐만 아니라, 정릉골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더 이상 돌아올 곳이 없게 만들어 버린다.

정릉골이 강제집행 되어서 안 되는 핵심적인 이유는 성북구청과 서울시가 재개발 진행 과정에서 이 곳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릉골이 주택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된 2012년 당시 정릉골 주민 1237명 중 930명이 세입자였다. [1] 매매로 거주하던 대다수의 주민들은 진작 떠나고, 비싼 주거 요금을 감당할 수 없는 세입자들만 남아 국가로부터 그 무엇도 보장받지 못한 채로 어쩔 수 없이 이 곳에 남게 되었다. 정릉골 재개발은 2012년 확정된 당시부터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 문제가 언론과 매체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건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2년 전 조직된 정릉골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비대위가 연대를 요청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그 요청에 응답하기 시작하는 이들이 생긴 것도 당장의 생존을 위협 받는, 비교적 최근이 되어서야 일어난 일이다. 생존을 위협받는 이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연대를 요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릉골에 남은 이들에게 ‘이 곳에 남아야할 이유’는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국가에 의해 거주권이 침해되었고, 피해를 보상받지 못한 채로 이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릉골에 남은 주민들은 대부분 중년을 넘긴 어르신들이다. 청계천 일대 노동 현장의 산 증인인 이들은 청계천의 재개발이 진행되자 도시 각지로 흩어졌다. 그중 한 마을이 정릉골이다. 그저 사람답게 살 권리를 위해 투쟁해온 이들에게 가해져왔던 반강제적 이주와 현재의 강제집행은 국가가 당연히 보장해야할 주거권을 침해하는 폭력이다. 결국 서울시와 성북구는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동시에 기존의 세입자들을 내쫓다시피 하는 고급 타운하우스 개발을 승인하고, 건축사와 투기꾼들의 이득에 동조하여 원주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또한 재개발 과정에서 동네의 역사성은 파묻히고,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원주민들이 일궈온 정릉골이라는 마을 공동체의 정체성은 그 역사성과 전혀 관련 없는 자본주의에 의해 높은 건물들로 뒤덮이며 사라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과 더불어 이 곳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갈 곳을 잃고, 무성한 자연환경 또한 파괴된다.
땅을 사고 판다는 인간의 논리로 쫓겨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그리고 정릉골 문제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결코 정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발빠른 발전 아래 기술과 산업이 앞서나가는동안, 우리는 의지하고 돌아갈 고향을 잃어간다. 그것이 실제 땅이든 관념적인 고향이든 우리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기억 속 장소를 안고 살아간다.

이렇듯 부재하는 고향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정릉골로 향한다. 이미 고향을 잃어버린 자들, 그리고 고향의 개념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들의 연대로 정릉골은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강제집행이 수차례 발생하고,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급박한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주민과 연대인이 한데 모여 매일같이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정릉골에는 인적, 물적 지원, 그리고 연대하는 마음을 보태야 하는 실정이다. 
결코 정주하지 못하는 개인의 연대가 모여 공동체가 되고, 이는 주민들의 정주할 수 있는 거주지 마련으로 이어질 것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듯, 마을 하나를 지키려면 온 힘이 필요하다.

 

 

 

 


[1] 박현정, 「재개발 강제 철거 불안에도…정릉골 못 떠나는 세입자들」, 『경향신문』, 2026년 5월 26일자.

 

'월간반항행동 6月호: 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탁  (0) 2026.06.25
흙도 생각하는가  (0) 2026.06.25
거름  (0) 2026.06.25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