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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삿날

월간반항행동 5月호: 역사

by 안티소셜( )클럽 2026. 5. 2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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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사

 

“너 데모하고 다니냐?”
 삼촌이 물었을 때, 왜인지 엄마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남매는 남매구나 싶었다. 너 데모 같은 거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날 귀찮게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그 말은 언제나 나를 귀찮게,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엄마가 상상하는 데모랑 다르다고 얘기해 봤자 뭔 소리야, 처음엔 안 위험해 보이지? 그것들 믿지 말라니까. 언제 어떻게 위험해질지 몰라. 그런 데 나가지 말라고 엄마가 몇 번을 말해. 폭탄 맞는 거 순식간이야. 위험하지 않다고 설명해도 소용없을 거고, 사실 어쩌면 엄마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뭔 데모요.”
 “네 가방에.”
 삼촌이 내 가방 앞주머니에 달린 팔레스타인 국기 배지를 가리켰다. 집안 어른들 중엔 저게 뭔지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떼지 않고 그냥 달고 왔는데 잘못 판단한 모양이다.
 “저거 뭔지 알아요?”
 “내려오는 길에 봤다. 서울 광화문에서.”
 배지를 잡아 뜯으려 손을 뻗자 삼촌이 내 팔을 가로막듯 급하게 말한다.
 “왜 떼. 떼라고 한 말 아냐.”
 “삼촌이 아는 거 보니까 엄마나 어른들이 알까 싶어서요.”
 “니네 엄마? 모를걸?”
 별로 웃기지도 않는데 뭐가 재밌는지 삼촌은 혼자 웃기 시작한다. 처음 들어보는 저 독특한 웃음소리가 익숙한 것은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때문일 것이다. 니네 삼촌 웃음소리가 진짜 웃기지. 뭔 스댕 그릇 벅벅 긁는 소리가 나서 그렇게 좀 웃지 말라고 나랑 할머니랑 얼마나 뭐라고 했는지. 근데 결국 못 고쳤어. 삼촌 살아 있었으면 내가 아직까지 잔소리 하고 있었을걸.


 삼촌 제삿날엔 집 안에 있기 싫었다. 그날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사는 일가친척이 우리 집에 다 모였고 모두가 삼촌에 관해 한 마디씩 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삼촌이 생전 남긴 말 때문이었다. 선학이가 그랬는데. 나중에 선희 딸 낳으면 아빠 말고 엄마 닮았으면 좋겠어. 우리 집은 여자들이 키가 크고 팔다리도 길쭉하거든. 어쩜 민영이는 첫째 딸인데도 아빠보다 엄마를 더 닮은 거 같아. 키도 크고 아주 모델이야. 내 키는 우리나라 여자 평균 정도이지만 어쨌거나 어른들에게 난 모델같이 늘씬한 것으로 되었다. 
 이런 것쯤은 괜찮았다. 내가 견디기 어려운 시간은 제사가 끝나고 나서였다. 엄마는 제사가 끝나고 삼촌 이야기를 하다가 꼭 울었다. 그러면 할머니와 이모는 따라 울었다. 삼촌과 친했던 고모와 큰아버지도 따라 울었다. 평소에 말수가 없고 감정 표현이 적은 아빠는 울지는 않았지만 답지 않게 삼촌에 관해 길게 이야기하며 엄마 손을 꼭 잡았다. 거실의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지고 우울해졌다. 집안 가득 찬 그리움의 무게가 날 짓눌렀다. 
 동생은 신기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사이에 덤덤히 앉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지금 교환학생을 가고 없다. 난 그럴 때마다 조용히 집 밖으로 나가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카페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거나 5.18 기념 행사장에 가 이것저것 얻어먹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동네 친구들이 집을 빠져나오는 것에 성공하면 그 애들과 함께 있었다. 모두 제삿날이 같았고 모두 집안의 공기를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올해 셋 중 둘이 동생처럼 해외에 있다. 남은 한 명은 평소보다 많이 모인 어른들 때문에 일을 거드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꼭 삼촌의 제삿날엔 집에 왔다. 그 때문에 항상 거실에 앉아 있지 않고 집 밖을 배회하는 나를 엄마가 놔두는지도 몰랐다. 하늘이 어두워질 때쯤 어디야, 전화하면 나는 어른들 드실 주전부리를 사러 나왔다고 했고 엄마는 언제나 괜찮으니 이만 들어오라고만 할 뿐이다. 


 올해도 수업을 마치고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예년과 같은 풍경, 같은 사람들이다. 제사상은 대부분 시내 반찬 가게에서 사 온 것들이고 중간중간 엄마가 직접 만든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삼촌이 좋아했던 음식이라고 들었다. 가느다란 연기가 느릿느릿 천장으로 올라가며 향냄새가 콧잔등에 스친다. 엄마가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했다. 엄마 옆으로 가 절하려 무릎을 구부렸을 때였다. 제사상 옆에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나를 보고 있었다. 순간 멈칫했지만 옆의 어른들을 따라 바닥에 엎드렸다가 일어났다. 그 남자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서서 나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친다. 누가 녹음기 재생 버튼이라도 누른 듯 귓가에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네 삼촌? 얼굴은 길쭉하고 사각턱이었는데 눈은 또 어찌나 맑고 큰지. 자주 입고 다니던 초록색 티셔츠가 있었는데 한번은 내가 갖다 버리려고 했어 그거…….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건 삼촌 제사고, 삼촌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는데. 

 
 “나 말고 엄마한테 가요. 엄마가 삼촌 엄청 보고 싶어 해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결국 받아들이고 내가 삼촌에게 건넨 말이었다. 
 “처음 한다는 말이 그거냐? 넌 삼촌 안 보고 싶었어? 난 조카딸 엄청 보고 싶었는데.”
 “아니 보고야 싶었죠. 저도 보고야 싶었는데…….”
 문장을 뭐라고 끝맺어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렸다. 향냄새, 전 냄새, 엄마의 울음소리를 어떻게 언어로 옮길 수 있을까.
 “많이 컸다. 작년보다 키가 더 컸나? 이제 서울 사람 다 됐네.”
 “작년? 매년 오셨어요?”
 “당연한 거 아니냐?”
 “근데 왜 저랑 올해 처음 봤을까요.”
 “음…….”
 삼촌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말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거든? 근데 느껴지는 건, 너한테 받을 게 있어.”
 “저한테요? 혹시 노잣돈?”
 “노잣돈은 무슨. 저승 간지가 언젠데.”
 “그럼 뭐예요?”
 “나도 몰라.”
 그래서 가족인지 유령인지랑 내 온 방안을 뒤집고 있는 것이다. 
 “나만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뭔지 감도 안 잡힌다. 삼촌의 사진과 유품은 대부분 엄마한테 있고, 내 물건들 중 중요한 건 거의 다 자취방에 있다. 일단 손에 닥치는 대로 상자란 상자는 다 열어보고 있는데, 대체 그게 무엇인지를 모르니 막막하기만 하다. 
 “뭐 힌트 같은 거 없어요? 어떤 거에 관련된 것이라든가.”
 “일단 나랑 관련된 거고, 나를 위한 물건이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수준이었다. 삼촌을 본 적이 없는데 대체 내가 그런 걸 왜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방문 바깥에서 엄마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민영아 와서 아버지 과일 깎는 것 좀 도와드려. 어 잠깐만. 
 “이거 언제까지 찾아야 돼요?”
 “오늘까지.”
 “그럼 아빠 못 도와주는데.”
 “매제 손가락도 불편한데 안 도와주게? 불효녀네.”
 삼촌이 장난스럽게 말한다. 
 “삼촌 때문이잖…….”
 “얘는 안 나오고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뭐해?”
 엄마가 별안간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나는 쭈그려 앉아있다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삼촌과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지만 엄마는 삼촌이 보이지 않는 듯 당황스러운 얼굴로 방을 둘러볼 뿐이다.
 “너 뭐 해?”
 “방… 정리.”
 “갑자기?”
 “너무 더러워서.”
 “나와서 아빠 좀 도와줘.”
 됐어, 괜찮아. 하던 거 해. 거실에서 아빠가 외친다. 엄마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방문을 닫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삼촌은 태연하게 박스에서 쏟아진 편지를 집어 들었다. 아빠가 어릴 적에 써준 거였다. 
 “매제가 참 손재주는 좋아.”
 그 말대로였다. 검지손가락 두 마디가 없는데도 글씨는 웬만한 사람보다 잘 썼고 고장 난 물건은 이것저것 뚝딱뚝딱 잘 고쳐냈다. 누군가 어느 부대를 나왔냐고 물으면 아빠는 장난으로 행정병이었다고 대답했고, 사람들은 아빠의 손 글씨를 보고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못하다가 손가락을 보고 놀라곤 했다. 
 “네 아빠 대학 때 서예 한 거 봤어? 기가 막힌다, 아주.”
 “아, 좀 집중해서 찾아봐요. 시간 없다면서.”
 나는 편지를 낚아채 도로 상자에 집어넣었다. 삼촌이 저렇게까지 찾는 걸 보면 분명 귀한 것일 텐데 당연히 그런 물건은 전부 안방에 있다.
 “아무래도 안방을 찾아봐야 할 거 같아요.”
 “아니야. 네 방에 있어.”
 “진짜 없다니까요.”
 나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우선 내 기억에는 삼촌을 위한 물건이 없다. 그렇다면 기억에 없던 시절의 물건일까. 아주 어린 시절의 어버이날에는 일가친척 모두에게 편지를 적곤 했으니까. 
 “제가 어릴 때 접은 카네이션 이런 거일 가능성도 있을까요.”
 “그럼.”
 “그런 거 때문에 제 앞에 나타나기까지 하신다고요?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왜 안 중요한데.”
 삼촌이 말했다.
 “중요할 수도 있지.”
 그래서 방구석 저 어디쯤 넣어둔 먼지 쌓인 상자를 꺼냈다. 꽤 오래 걸렸다. 그 상자 안을 또 뒤져서 아주 어릴 적에 만든 카드 더미를 찾아냈다.
 “이거… 이거야.”
 삼촌이 카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주 서툰 솜씨로 접은 카네이션이 붙어있는 편지였다. 짤막한 문장 몇 개가 색색의 크레파스로 적혀있었다. 삼촌에게. 삼촌 저도 나중에 삼촌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랑해요. 
 “기억나요.”
 내가 말했다.
 “엄마가 그거 보고 울었어요.”
 “너희 엄마는 항상 울잖아.”
 “삼촌 제삿날에만 우는 거예요. 평소에는 안 울어요.”
 “그러고 보니 살아있을 땐 선희 우는 거 잘 못 봤네.”
 “이제 가시는 거예요?”
 “가야지.”
 “내년에도 오세요?”
 “그럼. 너는 못 보겠지만.”
 “상관없죠. 삼촌이 오신다는 걸 아니까요.”
 “오. 진짜 어른이네.”
 그리고 들려오는 ‘스댕 그릇 긁는’ 웃음소리. 
 “언젠가 다시 만나겠죠.”
 “그래. 근데 웬만하면 늦게 만나자. 이제 진짜 시간이 없어. 정말 가야겠다.”
 삼촌은 손을 한번 흔들더니 방문을 열었다. 나가기 직전 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항상 응원한다.”
 그게 다였다. 삼촌은 순식간에 방을 나갔다. 바로 따라 나갔지만 내 방 앞에는 아무도 없다. 거실로 뛰어나가 보아도 엄마랑 고모 몇 명 뿐이다.
 “왜 그래?”
 “아, 아냐.”
 “너 오늘 이상하다. 밖에도 안 나가고.”
 “다른 사람들은?”
 “행사 구경갔어.”
 엄마가 날 쳐다보는 눈빛을 모른 체하며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잘게. 엄마 잘 자.”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 휴대폰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기차 시간이 빨라 얼른 준비해야 한다. 거실로 나가니 엄마가 소파 아래에 앉아 밤을 까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없이 엄마 혼자였다.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어른들 가는데 안 깨웠네.”
 “너무 곤히 자길래.”
 “아빠랑 할머니는 자?”
 “어.”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몰라. 요새 아침잠이 없다.”
 잠깐의 정적 틈새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스며들고, 동시에 엄마가 묻는다.
 “너 어젯밤에 누구랑 얘기했어?”
 그렇게 묻는 말 속엔 설마 하는 심정, 그 ‘설마’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아는 데에서 오는 본능적인 망설임이 있다. 
 “윤지랑 전화했다.”
 “삼촌 어쩌구 하던데.”
 “삼촌 제사 지냈다고 얘기했지.”
 “아, 그래?”
 실망감과 다행스러움이 한 데 섞인 대답이었다. 
 “나 좀 이따 나가야 해. 오늘 수업 있어서 아침 기차 예약해놨어.”
 “알았어.”
 “종강하면 올게.”
 “그래. 자주 좀 와라. 아침 먹고 갈 거지?”
 엄마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부엌으로 가 프라이팬을 꺼낸다. 
 “됐어. 학교 가서 먹을게.”
 “뭐 하러. 그냥 먹고 가.”
 “뭐 도와줘?”
 “도와줄 거 없어. 가서 환기나 좀 시켜라.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다 베서 빠지지를 않네.”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 문을 있는 힘껏 열었다. 파란 새벽하늘이 서서히 밝아진다. 프라이팬 위에서 계란이 단단하게 익어가는 동안 시원한 바람이 거실로 한가득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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