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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공동체, 연대

월간반항행동 5月호: 역사

by 안티소셜( )클럽 2026. 5. 2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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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미술의 특수성이 서구 이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

 

구정은

 

예술학을 공부하다 보면 종종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텍스트를 통해 접하는 이론이 현장의 감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다. 국내의 미술이 통상적인 예술 언어로 온전히 치환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서구 문화권과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은 국내 미술계만의 고유성을 드러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한국 미술 현장과 서구권 텍스트 사이의 통용되지 않는 언어를 좁히는 일은 일종의 숙제처럼 느껴진다.

서구 근대 미학이 오랫동안 백인 남성을 보편 주체로 규정했음을 생각하면 이론과 비서구 문화권의 현실 사이 괴리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이 정확히 어디서 오는지, 왜 특히 한국인으로서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한 답은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근대 모더니즘 이론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미술 연구는 동시대의 많은 미술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모더니즘은 시대나 사회와 같은 작품 외부 요인인 내용보다 매체의 형식을 중점적으로 미술을 해석해왔다. 그러나 한국에서 미술은 단순히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조선시대부터 근대 시기의 단색화나 비구상 흐름에 있어 형식이 중시되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미술의 근간은 내용적 측면에 있다. 

그렇다면 내용을 중시하는 서구 미술 이론은 국내 미술 연구에 적합한가? 앞서 모더니즘이 전제했던 순수성에 바탕 한 형식의 한계를 비판하기 위해 서구에서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이 작품의 내용과 관람자의 해석의 권위를 부상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이론이 한국 미술의 내용적 측면에 적합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서구 문화권의 주류-당시에는 주류가 아니었으나 대형 미술관의 포스트모더니즘 컬렉션 편입 흐름 이후 부상한 미술인들까지 포함하여- 문화라면, 소수자를 조명하는 서구 이론은 적용될 수 있을까. 대표적으로, 식민 역사를 가진 국가들의 공동체 통합과 담론 형성의 기초를 마련한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여전히 한국 동시대 미술을 설명할 수 있을까. 서구 중심의 지식 체계가 비서구 세계를 어떻게 타자화하고 지배해왔는지를 분석한 에드워드 사이드와 호미 바바의 이론은 한국 미술이 받은 억압적 서사와 이를 탈피하기 위한 해방 이후의 노력을 설명해줄 수 있다. 이들의 이론이 한국 미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미술은 이 이론들 안에 완전히 안착하지 않는다. 한국의 식민 경험은 서구 제국주의의 직접 지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국은 또 다른 비서구 국가인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였고, 해방 이후 식민 잔재 청산과 국가 문화 보존을 해야하는 골든 타임을 분단과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보내버렸다. 이 과정에서 미국 중심의 근대적 질서에 편입되면서 발화되는 국내 담론들은 서구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한국의 식민성은 단순히 서구와 비서구,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이분법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식민 역사의 복잡성 외에도 근현대 한국의 발전 과정 자체의 복잡성으로 인해 단순한 이론 끼워 맞추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10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면, 한국의 산업화는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윤리가 따라가지 못할 때 사회적 균열이 발생하듯이 한국에서는 근대화의 속도를 예술과 감각이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민주화 역사와 유신 체제의 감시 아래 예술인들은 국가에서 요구하는 민족기록화사업에 반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했던 상황과, 해방 직후 이데올로기나 제자 양성 등의 이유로 분열한 국전에서의 대한미협과 한국미협 간 갈등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작업보다 정치에 시선을 두게 만들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예술가들은 예술의 본질적 목적인 사회 비판에서 점점 멀어져, 앞서가는 산업을 예술이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가 예술가들을 무력하게 만들지라도, 한국 근대 예술가들은 예술의 본질로 나아가고자 했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지만, 단순히 거울처럼 그 시대를 객관적 지표로서 보여주는 산물은 아니다. 예술은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는 지와 기억 이면의 감춰진 것들이 무엇인지 파헤쳐낼 수 있다. 이데올로기 충돌과 암울한 현실에서도 모든 한국 예술가가 소망하고, 지켜낸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공동체 의식과 연대 정신일 것이다.

제국주의 일본으로부터 국가를 빼앗긴 상황에서 배제할 수 없던 ‘민족성’이 5.18 민주화운동, 4.19 민주주의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계승되고, 21세기에 들어서는 대통령 탄핵시위와 세월호,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로 연결되는 과정 전반의 중심은 공동체 의식과 연대 정신이었다. 

그리고 동시대 한국 예술가들 또한 이들의 정서를 계승한다. 근대적 민족성이 동시대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민족 정서는 한국 예술계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국 미술에서 사회적 발화와 공동체 연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미술은 오랫동안 암울한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사적 발화 기능 이상으로, 감춰진 역사와 애도 되지 못한 공동체적 감정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결국 나라를 되찾기 위해 연구해야 했던 민족성이 동시대에서 애도와 사회 비판, 소수자 가시화 등의 공동체적 연대로 계승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한국의 예술가들이 왜 사회적 사건 앞에서 연대하는지 고찰하게 되었다. 미술인과 비미술인의 경계에 있었던 시절, 왜 유난히 예술인들이 사회적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궁금했다. 미술계의 일원인 지금까지도 동료 작가, 기획자들이 시위에 나가는 이유, 그리고 관성적으로 그들과 함께 연대 행동에 뛰어드는 나 자신에게서 조차 명백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왜 예술인들은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추모와 연대의 공간을 만들어낼까.

그 이유는 예술이 사회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예술은 사회적 사건 이후 감추어지고 처리되지 못한 감정과 책임을 가시화하고 추모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사회가 고통을 지우려 애쓸 때, 예술은 그 고통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술가 개인이 아무리 사회로부터 탈피하고 고독을 추구할지라도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예술가를 호출하고, 예술가들은 기꺼이 그 현장에서 연대하기를 택한다.

결국 이권 침탈을 당한 역사가 자리한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에는 민족성에 기반한 연대의 정서가 뿌리 내려 있다. 또한 한국 미술이 왜 서구 주류 이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지에 대한 해답은 한국의 지역성이 촉발시킨 고유한 연대 정신에 있을 것이다. 마무리에 앞서, 전체주의 혹은 래디컬한 민족주의로 빠지지 않도록 덧붙이자면 식민 역사를 가진 모든 민족이 탈식민주의라는 이론 아래 통합되는 것은 불가하다. 지역별, 민족별 정체성이 다른 공동체를 식민 역사 아래 억지로 묶으려 한다면 그 또한 새로운 전체주의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술인으로서 경험한 바에 입각한, 당사자적 시각에 기반한 글임을 참고 바란다. 식민 역사 아래 발전한 정서적 동료 공동체들 또한 각기 고유한 방식의 지역 예술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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